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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안에 신이 있다
무루

『작은 사람과 신』

키티 크라우더 지음, 이주희 옮김, 논장 펴냄



누구나 자기 안에 신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종종 다정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 이를테면 자기 안의 가능성이나 타자와의 연결성, 존재의 신비로움 같은 것을 일깨운다. 『작은 사람과 신』도 그런 이야기다. 한 작은 사람이 어느 날 숲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신을 만나 한나절을 보내는 이 이야기를 통해 키티 크라우더는 ‘모든 존재 안에 신성이 있다’고 말한다.


  '신'이라고 하면 보통은 위엄 있고 거대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신은 좀 다르다. 엉뚱하고 장난기가 많으며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도 미숙하다. 그는 물 위를 걸을 수는 있을지언정 수영은 할 줄 모른다. 작은 사람은 이를 통해 자신이 신보다 잘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늘을 나는 것보다 수영하는 것을 자신이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신과 함께 나란히 숲을 걷고 물놀이를 하고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 동안 둘 사이에는 끊임없이 질문과 답이 오간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는 묻는다. 신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다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야기 속, 신성을 시각화한 장치들에 힌트가 있다. 그중 하나는 주황색의 사용이다. 처음엔 오직 신의 몸을 감싸는 오라로만 등장하는 주황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풀과 나무와 동물들에게도 번져 간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 테오의 이름에 '신'을 뜻하는 의미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장면 전체는 주황빛으로 물든다. 신성이란 특정한 존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장치인 신의 변형 또한 재미있다. 작은 사람의 요청에 따라 신은 다양한 존재로 모습을 바꾸는데, 어떤 형상으로 변하든 그 안에는 늘 동일한 본질 하나를 품고 있다. 이야기는 말한다. 신이란 멀리 있지 않으며 신성 또한 특정한 존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빛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곧 우리 안의 가능성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모든 존재 안에 신성이 있다'는 관점은 인간의 의식에 깊이 관여한다. 이는 자신뿐 아니라 서로 다른 생명 속에도 빛나는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타인을 향한 존중과 세계를 향한 경외의 감각을 일깨운다. 이러한 인식은 존재를 분리하거나 위계화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이해하게 하며,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삶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든다.


  누구나 자기 안에 신이 있다. 자기만의 빛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신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작은 사람은 온몸에 주황빛 오라를 두른 채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다. ‘사람을 영원히 바꾸어 놓는 그런 날들이 있어.’ 그가 만난 것은 신이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이기도 했다. 때로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되어갈 수 있다. 혹은 자신을 아주 조금 넘어서 볼 수 있다.


글쓴이 무루


읽고 쓰는 사람.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와 『우리가 모르는 낙원』을 썼다. 동료와 함께 그림책 『섬 위의 주먹』, 『나의 오두막』, 『인생은 지금』 등을 번역했다.

@moo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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