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코쿤북스 펴냄
끝나지 않은 인연
사실 나는 번역가가 되기 전에는 내가 번역가가 될 줄 몰랐다. 번역가가 되려고 노력하거나 준비 과정 같은 것을 밟은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영문과 대학원에 다니며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편집장님이 새로 계약한 책을 주면서 번역을 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첫 책을 번역했다.
그다음에도 일이 수월하게 이어졌다. 아르바이트하던 출판사에서 생긴 인연 덕에 알음알음 처음 두어 해 동안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원래 알던 출판사가 아니라 모르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출판사에서 나에게 맡기고 싶다고 한 책은 수전 손택의 후기 비평집이었다. 나는 수전 손택이란 이름은 간신히 들어 봤지만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을 쓰는지는 잘 몰랐다. 지성의 범위가 방대하고 꽤 난해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 내가 감당하기 힘들리라는 것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어떤 책을 만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출판사에게, 나 자신에게), 책임을 지고, 헌신하고, 내 이름을 저자의 이름 옆에 나란히 적어서 책으로 내는 일은, 엄중한 맹세이고 신비한 인연이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번역을 작가와의 결혼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번역은 깊이 사무치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 역자가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찾아 인연을 맺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 편집자가 중매쟁이처럼 상대를 선보여 주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조심스레 수락하거나 거절하게 되는 꼴이다(다행히 평생이 아니라 몇 달만 헌신하면 되는 관계라 결혼만큼 위험이 크지는 않다). 우연히, 마치 선물처럼 주어지는 인연이랄까.
그렇게 2004년 12월 28일에 세상을 뜬 수전 손택이 2005년 초 미숙하고 아직 번역이 뭔지 잘 모르던 나에게 왔다. 기쁘게 인연을 받아들여 번역을 시작했지만, 텍스트를 붙들고 한참 씨름하고도 백 퍼센트 이해하고 번역했다는 자신이 없었다. 책이 출간된 다음에, 한 독자가 책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번역이 나쁜 것 같으니 환불해 달라고 서점에서 소동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출판사 대표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는 오래 상처로 남았다. 괜한 억지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번역에 흠잡을 데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전 손택에게 빚진 마음이 남았다.
15년이 지난 뒤에,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쓴 책의 번역 의뢰가 들어왔다.
이따금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를 받을 때, 이건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칼 세이건의 딸인 사샤 세이건이 쓴 에세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펴냄)를 의뢰받았다. 책을 읽어 보는데 앞부분에서 사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하는 대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일부를 읽어 주시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이 아버지를 애도하는 일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책의 내용도 애도를 비롯한 일상의 의례에 관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천 척의 배』 (나탈리 헤인스 지음, 홍한별 옮김, 돌고래 펴냄)는 원서를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 ‘숙려 기간’일 때(충동구매를 자제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가 들어왔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고록도 그랬다. 언젠가 읽으려고 영어본을 갖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읽진 않았으나), 항상 손택을 ‘내 작가’라고 부르기에 조금 자신 없는 마음이었는데, 이 책을 맡으면 다시 인연을 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내가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번역을 하게 된 것처럼—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수전 손택을 알게 되었다. 시그리드는 손택이 유방암 수술 후 회복하는 동안, 그간 밀린 서신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되었다. 시그리드도 손택의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아직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었는데, 손택을 만나며 새로운 책과 새로운 경험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시그리드가 손택의 아들과 사귀면서 세 사람은 한집에 같이 살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되지 못한 젊은이가, 유명한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지성인과, 게다가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미묘한 관계로 부대끼게 된 것이다.
시그리드도 나처럼 ‘뭘 잘 모를 때’ 수전 손택을 만났고 그 경험은 수혜이자 상처였다. 시그리드가 손택에게 느끼는 감정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강도는 다르지만) 놀랍게 비슷하다. 경외감, 애정, 감탄, 고집과 오만에 대해 느끼는 염증, 상처, 원망, 그리고 오래 남은 죄책감.
물론 내가 손택과 맺은 인연은, 책을 통해서 맺은 간접적이고 (내 쪽의) 일방적인 인연일 뿐이다. 같이 살고 얽히고 애정과 고통이 뒤섞인 인연을 수십 년 이어 온 누네즈의 관계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회고록을 번역하면서 나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심정이 어떠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부정적 감정이 앞서고 심지어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존경하고 연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은 어떤 것인가. 열렬하고 파괴적이며 내가 품을 수 없는 범위의 정신을 지닌 사람의 곁에서 다치고 초라해지는 기분은 어떠한가. 또한 누네즈는 책의 텍스트 너머의 불분명한 존재였던 수전 손택이라는 작가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작가를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번역의 출발점이다.
다행히 손택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책을 포함해 수전 손택의 에세이 다섯 권이 윌북 출판사에서 새 번역으로 재출간되는데, 내가 『해석에 반대한다』과 『영화에 관하여』 이렇게 두 권을 맡아 번역했다. 곧 책이 나올 테고 이제는 당당하게 손택을 ‘내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글쓴이 홍한별
번역가. 클레어 키건, 애나 번스, 가즈오 이시구로, 데버라 리비,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시그리드 누네즈, 사샤 세이건, 나탈리 헤인즈, 앨리스 오스월드, 조앤 디디온, 리베카 솔닛 등의 책을 옮겼다. 지은 책으로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아무튼, 사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공저), 『돌봄과 작업』(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