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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한수희

저소비 생활

가제노타미 지음, 정지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아아 이렇게 귀한 지면엔 뭐랄까, 좀 더 있어 보이는 책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데…… 하필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이 책이라 어쩔 수가 없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출이 야금야금 늘어 수입에 비해 과하게 쓰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들던 차였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얼마나 줄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지금의 생활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냉장고는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전락하고 있다. 매일 아침 옷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입을 옷이 없다는 번뇌에 휩싸여야 한다. 매일 치워도 매일 물건이 쌓이는 집은 내 머릿속처럼 어수선하다. 나도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고 잘 정돈된 집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벌지 알 수 없는데 계속 이렇게 써 대면서 살아도 되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지나친 이상을 추구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돈으로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으며, 사치스러운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생활에 전반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책 속에는 월초는 빈약하게 월말은 사치스럽게 쓰는 지출법, 돈이 필요 없는 환경의 중요성, 지출 메모와 쇼핑 메모 쓰기, 투자의 즐거움으로 소비욕을 잠재우는 방법 등 시시콜콜한 팁들도 있지만, 행복한 저소비 생활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지금 가진 것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만족하는 게 우선이라는 조언도 있다. 저 먼 곳에 있는 이상을 좇아 자신을 계속해서 몰아치기에 소비욕이 늘어나고 생활을 방치하게 되며, 그로 인한 불만족이 다시 소비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저소비 생활이라는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 가진 것을 아끼고 돌보며 살아가기.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살아가기.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만끽하기.


"거창한 삶보다 작은 단위인 자기 손안에 있는 일상을 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로 파악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무것도 아닌 산책이나 낮잠 시간이 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으면 삶이 우아해진다."


 우아한 저소비 생활. 이런 생활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나온 대로 살고 싶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용기는 금세 사라지고 결심은 잊히며 나는 또다시 새로운 책을 찾게 되겠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얼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싶다. 내 시선을 우주처럼 광활한 곳에서 내 발밑의 작은 곳으로 돌려줄 책을 읽고 싶다.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일지라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 두렵더라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살아 있으니 살아가야 한다. 세수를 하고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옷을 입고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 반찬거리를 살 돈을 벌고 커피를 사 마실 돈을 벌고 공과금을 낼 돈을 벌어야 한다.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를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나도 안다. 이런 책에는 사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 쓰여 있다. 그런데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 듣고 싶다. 다 아는 뻔한 얘기들에라도 매달리고 싶다. 지금의 내게는 쉬워 보이는 길이 필요하다. 마음의 주름을 펴고 싶다.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아내고 싶다. 나는 지금 아주 사소하고, 아주 쉽고, 아주 뻔한 것들까지 잊어버릴 지경이라서, 그것들을 누군가가 다시 일깨워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을 읽는다. 꼭 이 책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이 책이다. 이런 것이 도움이 된다.


글쓴이 한수희


2013년부터 매거진 <AROUND>에 책과 영화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책 『온전히 나답게』,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마음의 문제』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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