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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책을 좋아한다고요?
김효근


『있기 힘든 사람들』

도하타 가이토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돌봄 책을 좋아한다고요?



 ‘그것’은 무질서하다. 예측할 수 없고, 무작위하며, 비합리적이다. 때로는 논리적인 듯 보이지만, 대부분은 그 어떤 논리도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반체제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떠한 부가가치도 만들어내지 않고, 체제의 성장 및 발전과도 관련이 없다. 제도권에 담으려 해도 자꾸만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나키즘의 실례를 물어본다면 첫손에 꼽을 만하다.


 ‘그것’은 반권위적이다. 내가 길러온 능력, 쌓아온 권위, 지켜온 명예,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능력을 발휘하려 나 혼자 애써도 잘 풀리는 건 전혀 없다. 권위를 앞세우려 해도 일언지하에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명예? ‘그것’ 앞에서는 티끌만큼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반근대적이다. 데카르트 이후 우리 머릿속에 진리처럼 자리 잡은 ‘확고한 개인’은 ‘그것’ 앞에서 힘없이 녹아내린다. 개인과 개인이 수동과 능동을 주고받는 구도로는 ‘그것’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이 반근대적인 이유는, 근대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다른 포유류에 비해 육체적으로 미숙한 채 태어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것’은 삶과 사회의 가장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대는 훨씬 본질적인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포용할 수 없기에, 저평가하는 동시에 체제 바깥으로 내버렸다.


 자, 여기서 ‘그것’이란 바로 ‘돌봄’이다.


 다다서재에서 6년 가까이 돌봄에 관한 책을 펴왔다. 다다서재의 외서 대부분은 많든 적든 돌봄과 관련이 있다. 이런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돌봄에 대단한 사명감이 있나 보다, 혹은 돌봄 달인인가 보다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둘 다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어린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매일매일 ‘이런 사람이 돌봄 책을 내도 괜찮은 걸까?’라는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돌봄을 회사의 중심 주제로 삼은 계기도 전혀 대단할 것 없다. 그저 첫 책이 돌봄에 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첫 책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이다.


 『있기 힘든 사람들』은 다다서재가 2019년 출간한 첫 책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의 개정판이다. 초판의 판매 성적만 보면 절판해야 했지만, 다다서재의 출발점이자 모든 책의 뿌리인 책이라 한 번만 더 도전하자 생각하고 개정판을 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편집장의 선택’에 선정되고, 출간 한 달 만에 중쇄도 하며 인정받았으니 도전해서 다행이다 싶다.


 이 글 첫머리에 한껏 폼 잡으며 쓴 돌봄에 관한 문장들은 모두 내가 『있기 힘든 사람들』을 두 차례 번역하고 수차례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이다. 일본의 임상심리학자가 오키나와의 정신과 돌봄 시설에서 동료 직원, (주로 조현병) 환자들과 4년 동안 함께한 일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학술서 겸 소설 겸 에세이다(절대 광고 카피가 아니라 진짜로 그런 책이다). 짧게 소개하기는 몹시 어려운데, 인간의 가장 기본이라 할 만한 있기(being)를 밑받침하는 의존과 돌봄에 관해 고찰하는 책이다. 소설, 에세이, 인류학, 심층심리학, 정신의학, 철학, 논픽션, 오키나와(?) 등에 관심이 있다면 읽고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자신한다(역시 광고 카피가 아니다).


 지난 6월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을 때, 여러 독자님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을 해서 깜짝 놀랐다. “돌봄에 관심이 많거든요.” “돌봄 책을 좋아해요.” 돌봄 책을 좋아한다니, 괜히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그럴까? 왜 돌봄 책을 좋아할까? 그 의문은 독자를 향하는 동시에 우리를 향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돌봄 책을 좋아할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마이너하기 그지없는 돌봄을 출판사의 중심 주제로 세웠을까?


 답은 이미 이 글에 적혀 있다. 그 답이란 돌봄이 무질서하고, 반체제적이고, 반권위적이고, 반근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고 도서전에서 우리를 응원해 준 독자님들은 모두 이 사회와 체제에 많든 적든 의문, 답답함, 억울함, 소외감, 슬픔, 분노 등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돌봄에서 찾은 것 아닐까? 적어도 우리는 그랬기에 7년 가까이 돌봄에 관한 책을 내고 있고, 앞으로도 망하기 전까지는 그럴 것 같다.


 『있기 힘든 사람들』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여러분의 ‘있기’가 오늘도 누군가와 함께 안녕하기를.


“있기(being)는 누군가가 옆에 앉아 있음으로써 가능해진다.”


글쓴이 김효근


다다서재 대표 겸 일본어 번역가 김영현. 『있기 힘든 사람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등을 옮겼다.

사진은 김효근 대표의 반려묘이자 회사 이름의 주인이기도 한 '다다'

@dada_li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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