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경일일』
마츠모토 타이요 글 그림, 이주향 옮김, 문학동네 펴냄
일이 어디 일이기만 한가
만화책을 고를 때는 표지를 본다. 비닐에 싸여 있고, 겉면에 책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고를 때 표지가 주는 느낌, 온도, 습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안 봐도 내 스타일이다 싶은 만화책을 골라 비닐을 벗겨 읽자마자 취향을 저격당할 때의 기쁨이란.
30년간 출판사에 근무하며 만화 잡지를 만들어 온 편집자 시오자와는 야심 차게 만화 잡지를 창간하지만 독자의 관심을 얻지 못한다. 만화 『동경일일』은 시오자와가 잡지 폐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퇴사하는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만화라면 당분간 쳐다보지도 않겠다 결심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퇴직금을 털어 새 만화 잡지를 창간하기로 한다. 이후 과거에 함께 일했던 만화가들을 찾아다니며 잡지에 실릴 작품을 모은다. 이후 남다른 직업의식을 가진 편집자 시오자와와 도통 하나로 엮일 것 같지 않은 만화가들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거친 듯 섬세한 그림을 통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마저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서둘러 책장을 넘기면서도 답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 가지 일에 일생을 바치는 사람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 일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과 즐기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까. 나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또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며칠 전, 평소 내 추천작을 자주 챙겨 보는 친구가 말했다. “네가 재밌다고 하는 작품엔 꼭 작가가 나오더라?” ‘그런가?’ 하고 말았지만 작가 이야기에는 일단 몰입하고 본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늘 작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구나. 그만큼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구나. 만날 그만두고 싶다면서도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구나. 만화 속 시오자와처럼.
시오자와는 대형 출판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자력으로 출간을 준비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만화가들은 불쑥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그가 부담스럽다가도 어떻게든 보답하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그들의 모습에 새삼 생각했다. 일은 일이기만 하지가 않다고.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일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자주 오르내리는 대화 주제 중 하나다. 평생 먹고살 돈이 있다면 일을 왜 하겠느냐는 사람도 있고, 자산을 숨기고(!) 하던 일을 이어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일 것 같다. 나에게 일은 하기 싫지만 하고 싶은 것. 그만두고 싶지만 계속하고 싶은 것. 뭐라고 정리할 수 없는 이 복잡한 마음 자체가 일에 대한 애정 아닐까. 적어도 시오자와와 나에게 일이란 숫자 1인 것 같다. 여전히 첫 번째에 있는 것.
1권을 다 읽기도 전에 3권까지 사 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 읽고 나니 새 책을 만들고 싶어졌다. 요새 통 의욕이 없어 내내 방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이렇게 글까지 쓴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절로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 가며 읽을 책. 출판 편집인과 만화가라는 직업, 출판계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작품이다.
만약 만화책을 구입한다면 부디 세 권을 한꺼번에 구입하시기를. 그래야 1권을 다 읽고 발 동동하지 않을 수 있다.

글쓴이 김신회
작가. 책 『아무튼, 여름』, 『꾸준한 행복』 등을 썼다.